메밀로 꿈꾸는 적당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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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아래첫마을 강상욱 대표

메밀로 꿈꾸는
적당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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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라산아래첫마을이 위치한 광평리 마을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광평리는 해발 500m 지대에 자리한 마을이라 제주에서 가장 높은 마을이예요. 제가 태어날 당시엔 12가구였는데, 지금은 이주민이 늘어서 마을 행사에 참여하는 가구가 21가구 정도 되고요. 제주에서 가장 높고 가장 작은 마을이라고 할 수 있죠.



Q. 한라산아래첫마을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사실 이 마을은 초고령화를 넘어서 초초고령화 상태였어요. 1973년생인 제가 이 마을의 막내거든요. 이런 상태라면 마을이 없어지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지속 가능한 고향을 만들자’라는 문제의식이 모아졌어요. 마을 총회에서 논의 끝에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게 됐고, 그렇게 한라산아래첫마을이 탄생했어요.



Q. 처음에는 어떤 일을 시도하셨나요?

처음엔 마을 목장이 있는 줄 알고 소를 다시 키워서 정육식당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IMF 시절 농가 부채와 연쇄 부도로 목장이 이미 사라진 상태였어요. 그러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메밀에 주목하게 됐죠.
광평리는 고도가 높아 농사지을 수 있는 작물이 몇 없어요. 콩이나 메밀 정도만 가능해요. 그중에 메밀은 꽃도 예쁘고 어르신들이 짓기에 그나마 수월할 것 같았죠. 그래서 메밀을 선택했고, ‘제주메밀육성사업단’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메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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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메밀 농사로 마을 경제를 일으키려는 과정은
어떻게 구상했나요?

무조건 소득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돈을 벌어야 고향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단 농사를 짓자고 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메밀 농사가 돈이 잘 안 되더라고요. 4월 중순쯤 파종하고, 장마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하는데 그 시기를 놓치면 농사가 망합니다. 가을은 태풍 때문에 수확이 어렵고요.
그래서 메밀을 재배만 하는 게 아니라 가공까지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리고 메밀 가공품을 활용한 식당을 운영해 보자고 방향을 잡았어요.



Q. 처음에는 향토 음식점으로 시작하셨다고요.

네, 메밀 고사리육개장, 빙떡, 메밀묵 같은 향토음식으로 시작했어요. 전문 셰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먹거리를 갖고 정직하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예를 들어 메밀묵은 빨리 상하기 때문에 동네 삼춘이 새벽 4시에 일어나 매일 직접 만들어야 했어요. 하지만 손님이 많지 않았고, 이렇게 하다가는 마을을 살리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겠더라고요.
그래서 냉면으로 메뉴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저희가 메밀쌀가루를 납품하던 서울의 거래처 중에 유명 냉면집이 있었어요. 그곳이 100% 제주산 메밀만을 고집했는데, 그곳에서 냉면을 배웠죠. 반 년 이상 배우러 다녔고, 돌아와서는 우리의 식재료로 다시 실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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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음식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좋은 식재료, 우리 식재료를 쓰는 게 제일 중요해요. 저희는 제주산과 국내산 재료로만 음식을 만들어요. ‘비비작작면’의 경우에는 들기름이 핵심이에요. 그런데 제주에는 들깨 문화가 없잖아요. 그래서 강원도 철원에 있는 3대째 내려오는 방앗간을 소개받아 들기름을 가져왔어요. 향과 맛이 확실히 달랐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재료를 바꿔가며 3개월 동안 메뉴를 다듬었죠.



Q. 그렇게 오픈하고나서의 반응이 궁금해요.

2019년 4월에 오픈했는데, 두 달 만인 6월부터 웨이팅이 생겼어요. 메밀꽃은 보통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피는데, 그 즈음 매해 작은 메밀 축제를 열어요. 그렇게 메밀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우연히 식당에 들른 거죠. 먹어보니 ‘정직하다, 괜찮다’라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고, SNS를 통해 입소문이 퍼졌어요. 지역 TV와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시고요. 이제는 꽃이 없어도 많은 분들이 계속해서 찾아오세요. 참 감사한 일이죠.



Q. 마을 주민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셨나요?

잘 안 풀릴 때일수록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실험이 필요합니다. 리더십은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그림을 보여줘야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거든요.
그리고 결국 공동체를 설득하는 건 눈에 보이는 성과예요. 성과 지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공동체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식당을 오픈했을 때도 그랬어요. 식당 웨이팅이 생기고,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을 보며, 마을 사람들도 마음을 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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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매년 이곳에서 메밀축제를 열고 계시는데요,
축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요?

축제의 주인공은 자연이라고 생각해요. 방어축제, 고사리축제, 유채꽃축제 등 전부 자연이 중심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축제를 하다 보면 자연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걸 막고 싶어요.
그래서 메밀축제에서는 최대한 플라스틱을 없애고, 친환경 컵과 재활용 용기를 사용하려고 해요. 내년부터는 일회용 앞치마, 시트지까지 바꾸려는 준비도 하고 있어요.



Q.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축제를 지향하신다고요.

네, 차별 없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장애인과 어르신들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축제가 되었으면 해요. 턱을 없애고, 안전한 동선을 보장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하고 있어요. 자연이 주인공이고,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축제. 이 두 가지가 지켜질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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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또 다른 마을 살리기 활동은 어떤 게 있나요?

광평리의 유일무이한 자산은 자연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편안하고 느리게 즐길 수 있도록 고배기동산을 정비했어요. 지금은 마을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잠시 쉴 수 있는 쉼터로 활용하고 있어요. 그 전엔 정비가 안되어있어서 사람이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였거든요.



Q.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정비했나요?

친환경적인 숲속 놀이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네 같은 구조물을 설치하려면 예산도 많이 들고 규제도 까다롭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할 수 있는만큼, 소소하게 그물 의자나 밧줄 사다리 같은 걸 만들었어요.
또 입구와 출구 같은 걸 표시하는 푯말도 필수로 갖춰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딱딱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자연이 말을 거는 것처럼 ‘환영해’, ‘from. 자연’ 같은 식으로 따뜻한 문구를 만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쓰레기를 거의 버리지 않고 깨끗하게 다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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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라산아래첫마을이 지키고자 하는 기본 원칙은 무엇인가요?

가장 기본은 고향을 지키는 일이에요. ‘사라져가는 마을을 다시 살리자’라는 초심을 잊지 말자는 거죠.
광평리가 꿈꾸는 비전은 ‘적당한 행복’입니다. 욕심을 부려 마을을 크게 키우겠다는 게 아니라, 딱 50가구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 이상 건물이 들어서고 자연이 훼손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을 내면 비교와 불만이 생기죠. 그래서 저희가 지키고 싶은 건 욕심내지 않는, ‘적당한 행복’이에요.



Q. ‘고향연금’을 계획하신다고 들었어요.

아직 논의 단계이긴 하지만, 75세 이상 어르신들께 매달 일정 금액을 드리는 연금을 만들고 싶어요. 5만 원이든 10만 원이든, 작더라도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고향연금’을 시작하는 거죠. 그렇게 해야 마을기업의 가치와 의미를 체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이 연금이 점차 커진다면, 노후에도 고향에서 살아도 되겠다는 확신을 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라산아래첫마을이 좋은 사례를 만들어서 다른 지역까지도 전파할 수 있으면 해요.



Q. 조합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희가 하는 일은 결국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에요. 갈등이 있어도, 어려움이 있어도, 마을 주민 모두가 행복하려고 시작한 일이거든요. 직원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자부심을 주고 싶어요. 정체되지 않으면서 늘 혁신하고 싶고요. 그렇게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차기 리더들이 나왔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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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10년 후, 한라산아래첫마을은 어떤 모습일까요?

앞으로 10년 후면, 마을 어르신들 대부분이 연세가 많이 드시거나 돌아가시기도 하겠네요. 그 전에 마을 주민들과 모두 모여 옛날 가문잔치 같은 3일 잔치를 열고 싶어요. 어르신 부부들을 위한 팔순 리마인드 웨딩 같은 것도 해드리고 싶고요.
또 기업으로서는 ‘제주 메밀의 모든 것’이라는 모토처럼, 메밀 축제부터 식당, 가공, 제품이 모두 이어지는 구조를 확립하고 싶어요. 사실은 무엇보다도 빚을 다 갚았으면 좋겠네요(웃음).



Q. 마지막으로, 한라산아래첫마을을 찾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광평리에 오시면, 조금은 느리게 걸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식사만 하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게 아니라요. 내가 이 음식을 먹었다는 인증보다, 내 삶이 잠시 행복해졌다는 경험을 하고 가셨으면 합니다.
산책로를 걸으며 한라산아래첫마을의 공기와 풍경을 천천히 느껴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곳의 의미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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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한라산아래첫마을의 ESG 전략



Environmental |
환경적인 측면에서 어떤 노력을 하나요?

플라스틱을 줄인 친환경 메밀축제를 열고, 고배기동산을 마을 쉼터로 가꾸며 자연을 지키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Social |
지역사회와의 소통은 어떻게 실천하나요?

주민들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고향연금’을 추진해 초고령화 마을의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합니다.



Governance |
기업 혹은 조직 내부적인 운영 원칙은 무엇인가요?

‘고향을 지키는 일’이라는 초심과 ‘적당한 행복’을 원칙으로, 무리한 성장 대신 모두가 책임을 나누는 조합 운영 시스템을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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